처음엔 몰랐습니다.
같은 산을 여러 번 오른다는 것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하지만 산행을 반복하며 계절이 바뀔 때마다 저는 조금씩 다른 산을 만났고, 그 산에서 마주한 감정도 항상 같지 않았습니다.
봄의 산은 희망 같았습니다.
겨우내 닫혀 있던 마음이 차가운 바람에 열리기 시작하고, 연둣빛 잎들이 가지마다 돋아나는 것을 볼 때마다 나도 다시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은 용기를 얻었습니다.
길가에 피어난 작은 꽃 한 송이, 부드럽게 흘러가는 봄바람, 아직은 선선한 공기 속에서 느껴지는 부드러운 설렘.
봄의 산은 나를 밀어붙이지 않고 조용히 말합니다.
“그렇게 천천히 피어도 괜찮아.”
그 말이, 너무 고마운 위로처럼 다가오곤 했습니다.
여름의 산은 숨이 차오르고, 마음은 가라앉습니다
여름의 산은 뜨겁고, 끈적하며, 무성합니다.
숲은 온통 초록으로 가득 차 있고, 햇볕은 강하게 내리쬐며, 땀은 등줄기를 따라 흘러내립니다.
숨이 가빠지는 오르막길, 그늘 하나 없는 경사로는 분명 몸에겐 부담이 되지만, 이상하게도 마음은 차분해지곤 합니다.
그건 아마도, 너무 많은 생각을 하기에는 육체가 바쁘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생각이 줄어들자 감정도 가라앉고, 그저 걷는 행위 자체에 집중하게 되는 시간이 이어졌습니다.
여름 산은 그렇게 말 없는 방식으로 “지금은 버티는 계절이야”라고 알려줍니다.
그 사실만으로도 나는 이 더위 속에서도 묵묵히 걷고 있다는 것에 작은 자부심을 느끼게 됩니다.
여름의 산은 다정하진 않지만, 내가 생각보다 강하다는 걸 조용히 일깨워주는 계절이었습니다.
가을의 산은 매일이 다르고, 그래서 아름답습니다
가을의 산은 매번 새로운 얼굴을 보여줍니다.
하루하루 색이 변하고, 나뭇잎이 떨어지고, 바람이 달라지고, 공기에서 느껴지는 기온까지 달라집니다.
그 변화는 빠르고 화려하며, 때론 너무 짧게 스쳐가 아쉬움이 남습니다.
가을 산을 오르다 보면 괜히 마음 한편이 아려지곤 합니다.
아마도 짧은 아름다움이 가진 특유의 쓸쓸함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길 위에 수북이 쌓인 낙엽을 밟으며 걷는 순간마다, 나도 언젠가 지나갈 것들에 대해 생각하게 됩니다.
가을은 지나간 계절을 품고 있고, 또 다가올 겨울을 준비하고 있는 시간입니다.
그래서인지 저는 가을 산을 걷다 보면 과거와 미래 사이에 고요하게 머무는 법을 배웁니다.
감정이 조용히 정리되고, 마음 깊숙한 곳에 쌓여 있던 이야기들이 낙엽처럼 바람에 실려 흩어집니다.
겨울의 산은 가장 고요하지만, 그만큼 따뜻했습니다
겨울 산은 가장 조용합니다.
소리가 거의 들리지 않고, 사람도 많지 않으며, 숲은 잎을 모두 떨군 채로 앙상한 모습으로 서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오히려 겨울의 산이 가장 따뜻하다고 느꼈습니다.
그건 차가운 공기 속에서도 변함없이 길을 지켜주고 있는 산의 태도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겨울 산은 “지금은 멈춰 있어도 괜찮아”, “쉬어도 된다”고 조용히 이야기해주는 듯한 분위기를 가지고 있습니다.
등산로 중간중간 눈 위를 밟는 소리는 다른 계절과는 비교할 수 없는 정적인 울림을 주었고,
혼자 걷는 겨울 산길은 마치 나 자신과 조용히 손잡고 걸어가는 시간 같았습니다.
겨울 산에서 저는 성장보다도 버티는 것의 의미, 움직임보다도 존재하는 것 자체의 가치를 더 깊이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추위 속에서 내가 얻은 가장 따뜻한 감정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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