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을 처음 시작했을 때만 해도, 저는 그저 체력을 기르기 위한 하나의 수단으로만 생각했습니다.
헬스장 러닝머신 위에서 뛰는 것보다, 자연 속에서 신선한 공기를 마시며 땀을 흘리는 게 더 낫겠다는 단순한 이유에서였습니다.
하지만 몇 번 산을 오르고 나서야 알게 되었습니다. 산은 단순히 ‘오르내리는 공간’이 아니라, 나를 천천히, 그리고 꾸준히 바꿔가는 조용한 선생님 같은 존재라는 걸요.
숨이 가빠지고 다리가 아파올 때, 괜히 산에 왔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 순간마다 자연은 말없이 저를 받아주고, 기다려주고, 채근하지 않고 묵묵히 곁을 지켜주었습니다.
그 반복이 쌓이면서, 저도 모르게 조급함을 내려놓는 법, ‘지금’에 집중하는 법, 그리고 비교하지 않고 걷는 법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길을 잃었을 때 멈추는 것이 가장 빠른 방법이라는 걸 배웠습니다
어느 날은 이정표를 잘못 보고 길을 잘못 들어선 적이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괜찮겠지 싶어 계속 걸었고, 시간이 지나자 길인지 아닌지조차 구분되지 않는 구간에 다다랐습니다.
그때야 비로소 걸음을 멈추고, 숨을 고르며 내가 어디에 있는지를 차분히 생각하게 됐습니다.
이 경험은 이후로도 제 일상에서 많은 의미를 주었습니다.
무언가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느끼는 순간, 예전의 저는 일단 ‘더 빨리’ 움직이려 했습니다.
하지만 산에서 길을 잘못 들었을 때, 가장 필요한 건 빠르게 걷는 것이 아니라, 멈추는 용기와 되돌아갈 결심이라는 걸 배운 이후로는, 삶의 다른 선택 앞에서도 잠시 멈추는 습관이 생겼습니다.
그 한 걸음의 멈춤이 때론 길을 바꾸고, 나를 구해주는 첫 신호일 수 있다는 것을 산이 가르쳐준 것입니다.
정상을 향하는 게 전부가 아니라는 것도 알게 됐습니다
처음엔 산에 오르면 ‘정상에 서야만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남들처럼 정상 인증 사진을 찍고, 고도를 확인하고, 시간 안에 완주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여겼죠.
그런데 몇 번의 산행을 거치고, 예기치 않은 날씨나 체력 저하로 중간에 포기한 날이 생기면서 깨달았습니다.
산은 정상에 오르지 않아도, 그 자체로 충분히 가치 있는 경험이라는 것을요.
나무 사이로 불어오는 바람, 바위 위에서 마시는 물 한 모금, 걷다가 마주한 이름 모를 들꽃 하나조차도 그날의 산행을 완성하는 조각이었습니다.
이런 경험이 쌓이면서, 목표보다 과정에 집중하는 태도, 모든 걸 성과로 증명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여유, 그리고 나 자신만의 속도를 인정하는 마음이 자라기 시작했습니다.
산은 늘 제게 말했습니다. “빨라도 늦어도, 오르든 말든, 너는 그 자체로 괜찮아.” 이 말을 들을 수 있었던 건, 고요하고도 단단한 자연 속에서만 가능했던 일이었습니다.
삶이 흔들릴 때, 다시 걷는 법을 산에게 배웁니다
요즘도 마음이 복잡해질 때면 산을 찾습니다.
계획했던 일이 틀어졌을 때, 관계에서 상처를 받았을 때, 혹은 이유 없이 무기력할 때도 산은 언제나 변함없이 제 자리를 지켜주고 있었습니다.
오르막과 내리막이 반복되는 산행처럼, 인생도 완만하게 이어지기만 하는 길은 없다는 걸 알게 되었고, 때로는 뒤로 걷는 순간조차도 나를 앞으로 나아가게 만든다는 것을 느낍니다.
숨이 차오르는 구간에서 나는 내 리듬대로 천천히 숨을 골랐고, 힘들면 멈추고, 물을 마시고, 다시 걸었습니다.
그 간단한 행동이 일상 속에서는 어디에도 없던 정직한 회복의 방식이 되었습니다.
이제 저는 산에 오를 때 단순히 ‘산을 정복하러 간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산이 내 안의 불안을 정리하고, 중심을 찾고,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는 법을 알려주는 공간이라고 여깁니다.
등산은 제게 운동이 아니라, 살아가는 태도를 다듬어주는 조용한 수업이 되었고, 자연이 들려주는 조언은 언제나 말보다 깊고 따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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